[김박사의 재미있는 브레인 톡톡(10)] 기억을 제조하는 해마, 늘 불완전한 소설을 쓰는 뇌

2016-10-07 07:12:49
우리는 지난 연재에 이어 변연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변연계에는 여러 기관이 서로 가까이 붙어 있기도 하지만, 편도체를 비롯해서 그 구조와 기능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주요한 기관들만 간추려서 담론을 진행하겠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바쁜 일상을 보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바로 이틀 전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해 내기 어렵습니다. 반면에 초등학교 때 불렀던 동요는 기억이 매우 정확히 나기도 합니다. 이런 차이는 어떻게 생기는 걸까 하고 우리는 늘 궁금해 합니다. 엊그제 일어난 사건의 가까운 기억은 종적을 감추고 나타나지 않는데, 수십 년이 지난 어린 시절의 기억은 왜 살아서 돌아온 걸까요? 그러니까 기억은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오늘은 인간의 변연계에서 기억과 관련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해마(海馬, hippocampus)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해마는 대뇌변연계(limbic system)를 구성하는 한 요소로서 측두엽의 양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크기는 보통 1㎝정도의 지름과 5㎝정도의 길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뇌의 해마는 바다에 있는 해마를 닮은 모양입니다. 실제로 뇌의 해마인 hippocampus는 라틴어로 ‘해마(sea horse)’를 뜻합니다. 뇌에서 해마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이유는 해마가 기억을 담당하며 기억 내용을 저장하는 방식과 어떤 걸 기억할 것인지를 담당하기 때문이지요.

기억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들을 보면 ‘memory’외에도 ‘mind’나 ‘remember’가 있는데요, 이 기억이라는 게 마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현재-미래가 하나로 연결됨으로써 과거의 시간을 되돌려 오래된 미래를 새롭게 경험하도록 하죠. 그 기억은 ‘나’를 존재감 있는 자아로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넘어 다가올 미래까지 송두리째 도둑맞는 거나 다름없게 됩니다.

해마는 새로운 사실을 학습하고 기억하는 기능을 하는 중요한 기관으로써 새로운 정보를 형성하는 곳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지식 자체를 저장하는 곳(long-term storage)은 아니죠. 기억은 뇌의 여러 영역에 걸쳐서 시냅스(synapse)의 연결에 의해서 저장되는 메커니즘(mechanism)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해마는 조합을 통해서 새로운 정보 조각들을 모아서 연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단 해마가 손상되면 새로운 조합은 만들어지지 않게 되어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존에 형성되었던 조합은 계속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에 학습을 통해 습득한 것들은 기억이 가능하답니다.

실험에 의해 해마가 공간적 위치를 나타내는 데도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예컨대 잘 알고 있는 거리를 이리저리 배회하는 장면을 떠올릴 때 해마는 매우 활성화되고, 동물도 자꾸 움직일수록 해마의 신경세포들은 공간적 위치를 나타낸다는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억과 공간탐험의 이중 작용이 학습과 기억의 조합으로 사용되는 공간적 위치를 훨씬 더 효과적으로 만든다는 사실에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억의 첫 단추는 해마에서 시작합니다. 뇌 전체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해마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죠. 그 이유는 모든 기억작업이 해마의 스위치가 켜지고 뉴런이 작동해야만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마는 기억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렇듯 해마의 중요성을 증명한 유명한 사례가 있습니다. 50여 년간 매일매일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던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1926년부터 2008년까지 살았던 남자, H.M.이라는 이니셜로 더 알려진 헨리 몰레이슨(Henry Molaison)입니다. 그는 뇌전증(간질(epilepsy) 자체가 잘못된 용어는 아니지만 사회적 편견이 심하고, 간질이라는 용어가 주는 사회적 낙인이 심해서 뇌전증이라는 용어로 바꾸어서 사용)을 앓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문제가 없는 평범한 청년이었습니다. 1953년 그가 27세가 되던 해, 의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간질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짐작되는 뇌 부위 제거 수술을 받기로 결심합니다. 수술부위는 해마 전체와 대뇌피질(cerebral cortex)의 측두엽 일부였습니다. 뇌전증이란 뉴런의 회로를 흐르는 전기신호에 이상이 생기는 질병인데, 그는 수술에 의해서 뇌전증의 증상은 사라졌지만 소중한 기억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은 의사도, 헨리도 몰랐던 사실, 바로 해마 없이는 새로운 기억이 생겨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해마를 제거한 이후, 그는 수술 후에 일어난 일은 그 어떤 것조차도 기억할 수 없게 되었지요. 헨리는 수술 후부터 50여 년 동안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전날 벌어졌던 일을 기억하지 못했고, 자신이 왜 병원에 있게 되는지 그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매번 의사의 설명을 듣고는 슬퍼했지만, 그것도 곧바로 잊어버리고는“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되묻는 날이 날마다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그가 수술 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였지만, 수술 전에 겪었던 일들은 거의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서전적 기억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장기기억은 측두엽 피질에 보존되었다고 추정합니다. 결국 그는 기억 자체를 상실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나 경험 등을 기억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다시 설명하자면 해마는 기억의 최종 ‘저장고’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의 경험이 ‘장기기억’으로‘변환’되는 장소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기억은 오감을 통해서 받은 외부의 자극이 해마를 통해서 전기신호로 바뀌어 대뇌피질에 저장된다는 것입니다. 즉 해마는 외부로부터 받은 신호를 정리하고 일시적으로 기억을 저장하는 작용을 담당하는데, 그 저장 기간은 1개월에서 몇 개월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해마는 모든 기억을 일시적으로 저장할 뿐, 그 이후의 기억은 측두엽을 포함한 대뇌피질로 이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헨리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에게 과거란 무엇이고, 미래란 또 무엇이었을까요?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5분마다 타인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인식해야 했던 그에게는 ‘나’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항상 기분이 좋은 상태였지만 기억을 만들 수 없는 삶은 무의미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뇌가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을 알아볼까요?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아닌 우리 뇌는 정보를 어떤 방식으로 저장하게 될까요? 이 점은 참 궁금한 부분입니다. 하드디스크는 정보가 입력된 상태 그대로 저장됩니다. 사진도 촬영한 그대로 저장됩니다. 그러나 망막만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가 매 시간 100기가 바이트 정도인데 이 정보를 평생 동안 지속적으로 뇌에 보관하기에는 그 저장고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결국 우리의 경험은 오감으로 지각하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극도로 압축된 상태로 뇌에 저장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기억과 정보의 압축은 해마의 역할인 것입니다.

이때 일반적인 정보는 ‘제목’ 위주로 압축이 이루어지고 나머지는 사라지게 됩니다. 핵심만 남고 군더더기는 없어지는 것이죠. 시간이 지난 후 입력된 정보를 다시 불러오면 뇌는 과거에 경험했던 본래 그대로의 정보가 아니라 이미 제목으로 압축된 정보를 출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험에 대해서 출력을 자주 반복하면 할수록 기억은 강화되겠죠? 압축된 정보 사이의 구체적인 내용은 과거 경험이나 편견에 바탕을 두고 재생됩니다.

이틀 전에 점심으로 무얼 먹었을까? 거의 한 시간을 앉아서 무언가를 분명히 먹었을 텐데 대부분 전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어제 회식 자리에 동석했던 동료의 넥타이 색깔도 대부분 기억에 없을 것입니다. 기억의 있고 없음은 인출의 빈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기억의 인출이 거의 없었던 이틀 전의 점심은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초등학교 때 자주 인출해서 불렀던 동요는 정확히 기억으로 출력되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증인으로서 어제 일어났던 일들을 구체적으로 기억해야 한다면 우리의 뇌는 어떻게 작동할까요? 우리의 뇌는 압축되었던 기억을 기반으로 무언가를 재생하여 결과를 출력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기억해 내면, 맨 처음 그 일을 경험할 때 관여했던 뉴런이 활성화됩니다. 하지만 회상은 과거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출력의 산물은 기억이 아닌 것입니다. 새롭게 재구성된 것이죠. 그것은 우리 뇌가 만들어 낸 불완전한 소설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 뇌에 저장된 기억을 인출한 회상은 선택적이기 때문에 신뢰성이 떨어져 믿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래서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하면 종종 낭패를 볼 수도 있게 됩니다.

브레인닥터 김종상 교수(원광디지털대학교/Ph.D. neuro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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