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속 신앙 기도터(20)]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새재 성황당

2017-03-17 06:00:18
문경 새재 성황당.
문경 새재 성황당.
경북 문경에는 아직도 동제나 성황제를 지내는 곳이 많다. 마을민의 소망을 함께 빌면서 동질감도 나누는 이런 아름다운 풍속이 아직까지 문경에 전해 내려 온다. 이는 전통이 깊고 산골사람들의 주체성이 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이 고장이 후미지고 문화적으로 보수적이라는 의미도 있다.

성황당 가운데 가장 번듯한 곳은 뭐니뭐니 해도 새재 성황당이다. 문경읍 상초리 제1관문 옆 산기슭에 있는 성황당에는 고운 자태의 여신을 모셨는데 이런 이야기가 전해온다.

병자호란 당시 화의파로 널리 알려진 최명길(1586~1647)이 젊었을 때 안동 부사로 있는 외숙을 만나러 가게 되었다. 새재를 넘어가는데 소복을 입은 한 여인이 따라오더니 앞질러 가는데 걸음을 재촉하여 아무리 빨리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문경 새재 성황당.
문경 새재 성황당.
그러던 어느 순간 여인이 발을 헛디뎌 넘어지자 최명길이 잡아주어 말을 트게 되었다. 말문을 연 여인의 이야기인 즉, 자신은 새재 성황신인데 새재를 자주 왕래하던 상인이 성황당에 바친 비단 치마저고리를 안동 좌수가 딸에게 입힌다고 가져갔으므로, 지금 옷을 찾고 좌수의 딸을 죽이러 가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최명길이 안동에 도착하여 좌수집을 물어 찾아가니 과연 곡성이 진동하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보니 새재 성황신이 막 딸의 목을 누르고 있는 형상이 보였다. 최명길이 성황신에게 좌수의 딸을 죽이지 말라고 요청하자 성황신도 최명길을 알아보고 “체면을 보아 딸을 살려준다”고 하면서 가버렸다.

그리하여 좌수의 딸은 살아나게 되었다. 후일 최명길은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새재 성황당에 들렀다. 성황신은 최명길을 보고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며 훗날 오랑캐가 쳐들어오면 종묘사직과 백성을 살리는 길은 화의밖에 없으니 명심하라며 사라졌다. 후에 병자호란으로 청나라가 쳐들어왔을 때 최명길은 주전파들로부터 비난을 사면서도 화의를 주장하여 전란의 피해를 줄이게 되었다.

이처럼 영험한 성황신이기에 옛부터 문경 현감이 제사를 올렸다. 요즈음에는 문경읍 상초리 사람들이 도맡아 해마다 정월 대보름, 삼월 삼짇날, 구월 구일날에 성대하게 제를 지낸다. 그밖에도 새재와 문경 일대에는 10여 군데에 성황당이 보전되어 있다. 산북면 소야리 소야 성황당의 성황신은 세종 때의 명장 최윤덕 장군이고, 산북면 내화리와 마성면 신현리 성황당의 성황신은 여성이다.

또 문경시 유곡동에 있는 유곡리 성황당은 개를 성황신으로 모셔 주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견공을 제사하고 동리의 안녕을 빌고 있다.

문경 새재 성황당에서 한 무속인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문경 새재 성황당에서 한 무속인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문경새재는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조령(鳥嶺)이라고도 한다. 풀이 우거진 고개(草岾) 또는 하늘재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에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로 했다는 설과 새로(新) 생긴 고개라는 뜻에서 '새재'로 지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1966년 문경관문이 사적 147호로 지정된 뒤, 1974년에는 주흘산(1106m)과 조령관문 일원이 경상북도지방기념물 18호로 지정되었다. 1979년 경상북도 제1호 국민관광지, 1982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 문경새재 성황당

지역 :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제1관문 옆


양태희 무속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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