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속 신앙 기도터(40)] 서울특별시 은평구 금성당(錦城堂)

2017-05-03 08:15:11
진관동 금성당(錦城堂)은 비운의 운명을 맞이한 조선시대 단종의 숙부 금성대군을 주신(主神)으로 모신 서울지역의 대표적인 마을당이다. 이 당은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외동 272번지에 있으며, 2008년 7월 22일에 중요민속자료 제258호로 지정되었다.

서울 구파발에는 원래 윗금성당과 아랫금성당 2개의 금성당이 있었다. 현재는 윗금성당이 없어지고 아랫금성당만 있다. 본당 안쪽에 다락방이 붙어 있었으나 촛불이 넘어져 불이 나는 바람에 다락방 부분이 없어졌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굿당. 금성당(錦城堂).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굿당. 금성당(錦城堂).




서울에는 원래 진관외동을 비롯하여 망원동, 월계동 등 세 곳에 금성당이 있었지만 모두 1970~1980년대 도시개발에 의해 자취를 감추고 구파발 금성당만 유일하게 남았다. 이 당들은 한때 서울 지역민과 유명 만신들로부터 추앙받던 성스러운 공간이었고, 마을 주민들이 대동하여 굿을 거행하는 마을당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 무당들이 개인적 굿을 하는 공공 굿당의 역할을 하면서도 조선 말기에 궁중 여인들도 이곳 금성당에서 기복 신앙행위를 했을 정도로 유명했다.

금성대군은 세종 8년(1426)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로 태어나 세조 3년(1457) 32세의 나이로 죽었다. 아버지 세종과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1446) 심씨 사이에 태어나 8살 때인 1433년에 금성대군으로 봉해졌다. 단종의 숙부이자 세조(世祖)의 아우인 금성대군은 죽은 지 334년이 지난 후 단종을 위해 충성을 바친 신하들에게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편정할 때인 정조 15년(1791)에 육종영(六宗英)의 한 사람으로 선정됐다. 영월의 창절사(彰節祠), 영주의 성인단(成仁壇), 괴산(청안)의 향사(鄕祠)에 배향되었다. 휘자는 유(瑜)이고, 시호는 정민(貞愍)이다.

어릴 적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충성심이 많았던 금성대군은 조카의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首陽大君, 1417~1468)의 모함으로 단종 3년(1455) 삭녕(朔寧)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광주(廣州)로 이배(移配)되었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핍박하여 왕위를 수선한 이듬해에는 성삼문(成三問, 1418~1456)·박팽년(朴彭年, 1417~1456) 등이 중심이 되어 단종 복위를 계획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 실패로 금성대군은 광주에서 다시 영주 순흥으로 유배됐다. 이곳에서 부사 이보흠(李甫欽, ?~1457) 등과 모의하여 단종의 복위를 계획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세조 3년(1457)에 사사(賜死)되었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금성대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역적으로 몰려 수천 명이 희생되었다.

서울시 은평구 금성당(錦城堂)에서 한 무속인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서울시 은평구 금성당(錦城堂)에서 한 무속인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러한 금성대군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오늘날 영주 순흥 두렛골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이 되면 금성대군의 충(忠)과 의(義)를 기리는 대동놀이가 매년 치러지고 있다. 한편 전국의 무속신앙에서도 금성대군이 신격화되었으며, 특히 서울과 경기 지역의 많은 무당이 그를 영험한 신으로 모시고 있다. 무당에 따라서는 몸주신으로 모시기도 하며, 마을 곳곳에서는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면서 그를 추모하며 기복을 비는 당굿을 정기적으로 행하고 있다.

과거 이곳 아랫금성당에는 많은 단골이 매여 있어 굿이 늘 있었다. 단골들이 굿을 하면 먼저 금성당에 찾아와 시봉자에게 굿돈을 내고 날을 잡는다. 그러면 당지기가 모든 음식을 장만하고 굿할 만신과 악사들을 불러온다. 당지기는 곧 당주 역할을 한 것이다. 굿을 할 만신들은 이곳과 가까운 영천과 구파발에서 데려왔다. 과거 영천과 구파발에는 유명 만신이 대거 거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옛 단골들이 금성당을 찾아와 굿을 요청할 때가 있지만 흔치 않다. 금성당 단골이 굿을 할 때 밖에 나가서 하는 경우가 있다.

금성당 무신도.
금성당 무신도.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금성당에서는 일년 내내 행사가 이어졌다. 정월 홍수맥이를 시작으로 음력 3월 24일 금성님 탄생일 맞이, 7월 칠석맞이 등 사시사철 중요한 행사들이 있었다. 특히 금성님 탄생일에는 더욱 정성껏 행사를 치렀다. 대부분의 단골들은 음력 정월 보름 안에 찾아온다. 아직도 전국에 흩여져 있는 당골들이 매년 찾아오긴 하지만 10여 명에 불과하다. 가끔 진관외동에 거주하는 동네 사람들이 연초에 이곳을 찾곤 한다.

한편 금성당을 오래전부터 다니던 만신들은 아직도 진적을 드리거나 새 제자를 내게 되면 이곳에 와서 금성님께 물고를 받아간다. 내림굿을 받을 제자들이 금성님을 선몽하여 이곳에 와 물고를 받아가는 경우도 있다.

이곳 구파발 아랫금성당에는 원래 금성님, 맹인도사, 맹인삼신마누라, 삼궁애기씨, 중불사, 창부광대씨, 별상님, 말서낭, 칠성님 두 분, 용장군님, 육대신마누라, 용궁부인, 삼불제석, 부처님, 삼불사할머니 등 총 16점의 무신도가 있었다. 지금은 맹인도사, 맹인삼신마누라, 삼궁애기씨, 중불사, 창부광대씨, 별상님, 말서낭, 삼불사할머니 등 8점만 남아 있고 나머지는 오래전에 도난당하였다.

금성당의 본당과 하당에는 신복을 비롯하여 악기, 촛대, 잔, 칼, 명두 등 여러 귀물(鬼物)이 있다. 제단 위에는 각각의 신령님 몫으로 되어 있는 소반, 촛대, 마지그릇이 놓여 있다. 천장에는 종이 달려 있고, 천장 대들보 아래쪽에는 여러 해 묶은 명두와 함께 여러 개의 전이 붙어 있다. (자료출처:국립민속박물관 양종승(梁鍾承))

● 서울시 은평구 금성당(錦城堂)
지정종목 : 중요민속문화재
지정번호 : 중요민속문화재 제258호
지정일 : 2008년 07월 22일
소재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진관동 175-836


양태희 무속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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