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휘궁(점집)의 무속이야기: 무당들의 무신 '단종대왕'

2017-06-23 20:10:00
단종(1441~1457)은 역사의 이면에서 다시 부활하여 살아 숨 쉬는 신령으로 존재하고 있다. 단종의 유배지이자 또한 죽음의 장소이기도 한 영월 일대의 지역민들은 그를 마을신이나 무신(巫神)으로 모신다.

단종이 신령으로 좌정하게 된 것은 그의 비극적인 삶과 죽음에 토대한다. 그는 왕의 신분으로서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 비극적인 생애를 살았기 때문에 그의 삶과 죽음을 함께 아파했던 당대의 사람들이나 후대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비록 그의 육신은 죽었지만 그의 억울하고 외로운 영혼은 그의 죽음을 아파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부활했다.

생물학적으로는 소멸되었지만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는 살아 있는 것이다. 단종의 비극적인 삶은 양위(讓位)로부터 비롯되지만 일반 백성들이 그의 현실을 피부로 느끼고 아파하는 계기는 그의 유배생활에서 비롯되었다. 단종이 신격화된 것은 그의 유배 길과 유배생활에서 잘 드러난다. 유배 자체가 신격화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았으나 영월에서의 유배생활은 단종과 지역민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중요한 기제로 기능하였고, 다른 지역보다 단종을 가까이에서 체험한 영월 지역민들에게 있어서 단종은 그들의 마음 속 깊이 간직될 수 있었다.

영월에는 상식을 벗어난 흉사(凶事)가 일어났다. 중종 36년(1541) 영월에 부임한 군수가 7개월간 3명이나 사망하고, 전염병이 유난히 창궐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 영월 지역민들은 이러한 흉사의 원인이 모두 단종의 원혼이 빌미가 되었다고 믿었다. 영월 지역민들은 국가의 공식적인 치제에 만족하지 않고 일반 백성들과 종교적으로 맺어지고 싶은 단종의 바람이 그러한 흉사를 유발시켰다고 믿게 되었다.

그 결과 성황사의 후신인 영모전(永慕殿)이 건립되고, 단종은 지역신령이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단종은 영월 일대에서 오늘날까지 마을의 신령 또는 무신(巫神)으로 숭배되고 있다. 영월에는 “인간이 단종을 보살피지 않으면 도깨비가 보살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종과 신적 존재들의 관계가 밀접하다.

영월에서의 단종 숭배는 두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가 사후에 태백산의 산신이 되어서 갔기에 태백산 일대에서 그를 태백산신으로 관념하는 것과 영월에서 태백산에 이르는 지역의 마을들에서 단종을 주신으로 모시는 것이다. 태백산은 이 지역의 명산으로서 조선 전기부터 현재까지 영산(靈山)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영월에서 활동하는 소문난 강신무(降神巫)는 일 년에 수차례나 이 산에서 ‘산맞이’를 한다.

단종을 모시는 영모전(永慕殿) 기도처에서 만신 김금휘씨가 기도를 올리고 있다.
단종을 모시는 영모전(永慕殿) 기도처에서 만신 김금휘씨가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곳에는 용한 무당이 단종의 현몽을 받아 세웠다는 단종대왕비각이 있다. 단종이 태백산신이 되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그곳에서 기도하는 용한 무속인들에게 재인식되고 있다. 영월에 거주하는 유명한 무당들은 단종을 몸주로 모시거나 굿을 할 때 단종을 주된 신으로 청배하는 일이 많다. 이들에게 있어 단종은 중요한 신령이어서 굿을 통하여 영월의 지역민들에게 단종에 대한 믿음을 확산시켜 간다.

단종을 모시는 마을은 태백산을 중심으로 영월군, 태백시, 봉화군 일대에 분포한다. 단종은 영월 지역에서 마을신, 무신으로서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까지 깊이 관여한다. 단종은 신앙생활뿐 아니라 의례생활에까지 깊이 관여하는 살아 있는 신령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금휘궁(점집) 만신 김금휘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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