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휘궁(점집)의 무속이야기: 무당들의 무신 '관성제군'

2017-06-30 20:10:00
무당들의 무신 '관성제군'은 서울굿 성제거리에서 모시는 무속의 신령이다. 관성제군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영웅 관우장군을 신격화한 신이다. ‘관성’ ‘관제’ ‘승제’ ‘성제’ ‘승전님’ ‘관우’ ‘관운장’ 등 다양한 이칭이 있다. 중국에서 관우는 무신(武神)과 재복(財福)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내신(殿內神) 계급의 전쟁신, 장군신, 호국신, 재물신, 재복신, 기복신, 치병신, 난리의 피란신 기능을 한다. 특히 소원성취에 영험하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전부인이라고 하여 관우의 부인을 신으로 모시기도 한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5호 마포 밤섬부군당도당굿 이수자 만신 김금휘씨가 최근 서울 종로 인왕산 국사당에서 서울굿 한양굿(성제거리)을 하고 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5호 마포 밤섬부군당도당굿 이수자 만신 김금휘씨가 최근 서울 종로 인왕산 국사당에서 서울굿 한양굿(성제거리)을 하고 있다.

관우가 신으로 승격된 것은 삼국지연의에서 그가 충성심과 의리가 있으며 용맹하고 위엄 있는 장수로 등장한 영향이 크다. 즉 삼국지연의의 영향으로 관우는 문무(文武)를 겸비한 성인(聖人)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관우가 민간신앙의 신으로 승화된 것은 중국 관왕묘(關王廟)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관우 신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조선 선조 31년 명나라 유격장군 진인(陳寅)의 주도하에 한양에 남묘(南廟)를 세운 것에서 시작한다.

관성제군이 민간신앙으로 발전되는 단초는 숙종, 영조, 정조대를 거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제사를 지낼 정도로 관왕묘가 번성한 후부터다. 특히 무속의 신 혹은 민간신앙의 신으로 일반화되는 시기는 1908년 2월 국가 소사(小祀)였던 관왕묘 제사를 철폐하면서 국가 주도의 신앙에서 이탈하면서 민간신앙화 된다.

서울굿 한양굿, 성제거리를 하는 만신 김금휘.
서울굿 한양굿, 성제거리를 하는 만신 김금휘.

관성제군이 무속의 신으로 정착하게 되는 계기는 고종 20년이다. 임오군란(壬午軍亂)으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충주로 피란 갔을 때 환궁(還宮)의 시기를 점치는 등 도움을 주어 신임을 받은 이씨라는 무당이 자신이 ‘관성제군의 딸’임을 자처하면서 관왕묘 건립을 건의하여 북묘를 건립하고, 윤성녀(尹姓女) 용한 무당이 고종의 계비이자 영친왕의 친모인 엄비(嚴妃)의 명을 받아 남묘를 세워 자손의 번영과 복록을 빌었다.

이 두 무녀는 각기 진령군(眞靈君)과 현령군(賢靈君)으로 봉해진다. 이후 한양의 무속인이 관성제군이 자기 몸에 내렸기 때문에 자신은 전내신이라고 하면서 사당을 세우고 확산되었다. 역사적으로 관성제군이 무속의 신으로 정착된 사실들이 있었음에도 관성제군은 서울굿에서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서울굿에서는 주로 상산거리 바로 앞에 성제거리가 나타난다. 관성제군은 흔히 조상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굿에서는 황색포를 입고 청룡언월도를 든 장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근래에는 경기도 성남 분당 수원 용인 안양 군포 안산 인천 등지의 유명한 무당들이 관운장의 의대를 소지하기도 한다. 이는 서울굿을 의뢰받을 때를 대비한 것이다. 요즘은 경기굿에서 관운장이 잠깐 등장하기도 한다고 금휘궁(점집) 만신 김금휘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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