氣로 본 한명회의 증조할아버지 한수와 할아버지 한상질의 묘…증조 한수 묘로 발복

[일월산인의 풍수기행(6)] 한명회(韓明澮)의 증조할아버지 한수와 할아버지 한상질의 묘

2017-11-02 07:41:02
한명회의 증조할아버지 한수의 묘.
한명회의 증조할아버지 한수의 묘.
한명회(韓明澮)는 증조할아버지 한수(韓脩)와 할아버지 한상질(韓尙質) 중 누구의 음덕을 본 것일까.

그들의 묘의 위치는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서곡리(장단군 진동면 서곡리)에 있다.

증조할아버지 한수(韓脩)는 1333년(충숙왕 복위 2) 8월 22일에 태어나 1384(우왕 10) 3월 28일에 타계한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중찬(中贊) 한악(韓渥)의 손자로, 아버지는 한공의(韓公義) 삼중대광보조공신(三重大匡補祚功臣) 호부상서청성군(戶部尙書淸城君)이다. 일찍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나 15세인 1347년(충목왕 3) 문과에 급제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1376년에 수충찬화공신(輸忠贊化功臣)이 되었고, 광정대부(匡靖大夫), 1383년에 판후덕부사(判厚德府事)에 이르고, 우문관대제학(右文館大提學),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 상호군(上護軍), 청성군(淸城君)에 봉해졌다. 충정왕이 왕위를 내놓고 강화로 쫓겨날 때 시종해 따라갔다. 1353년(공민왕 2) 전의주부(典儀注簿)로 기용되어 다시 필도치가 되었고 이어 전리좌랑·성균사예·비서소감·병부시랑·국자감좨주 등을 역임하였다. 한수는 충목(忠穆), 충정(忠定), 공민(恭愍)왕 등 3명의 임금을 모셨다.

특히 한수는 신돈(辛旽)이 집권하자 왕에게 신돈을 멀리할 것을 권했으며, 1371년 신돈이 제거된 후 왕이 다시 불러 이부상서·수문전학사(修文殿學士)에 올랐다. 그러나 공민왕 시해에 관여한 한안(韓安)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일시 유배되었다.

1350년에 태어난 할아버지 한상질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다. 성품이 총명하면서도 민첩했으며, 과거에 급제한 후 형조판서, 예문관제학을 지냈다. 고려가 멸망하고, 1392년 7월 조선왕조가 건국되자 예문관학사로서 주문사(奏聞使)를 자청해 명나라에 가서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승인받아 이듬해 2월에 돌아왔다.

두 분의 묘는 백호작국이라 외손 발복지이며, 청룡은 커다란 기복이 없고, 꿈틀거림이 없이 그저 얌전하게 흐른다. 증조할아버지 한수의 묘는 좌우로 묘를 썼고, 할아버지 한상질의 묘는 상하로 묘를 썼다.

증조할아버지의 묘는 쌍혈이고, 할아버지의 묘 중 위의 묘는 기맥도 수맥도 아닌 무맥지고, 아래의 묘(고려시대 벽화묘)는 혈이다. 벽화묘는 1980년대에 도굴꾼에 의해 도굴이 되었다. 도굴꾼이 묘에 벽화가 있는데 묘의 위치는 진동면 서곡리 야산에 있으며 비석에 청주한씨 문열공한상질(文烈公韓尙質)의 묘라고 새겨져 있다.

한명회의 할아버지 한상질의 묘.
한명회의 할아버지 한상질의 묘.

1991년 발굴한 결과 묘안 사방 벽면에 12명의 인물상을 배치하고, 천장에는 별자리 그림인 성신도(星辰圖)가 그려져 있었다. 북벽과 성신도의 그림은 확연했고, 동서남벽은 훼손이 심했으나 전형적인 고려말 무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묘 주변의 구조를 조사하다 전서체(篆書體)로 된 ‘증시창화권공묘명(贈諡昌和權公墓銘)’라는 지석(誌石)이 나왔다.

그럼 창화권공 권준(權準)은 누구인가. 권준은 한상질의 외할아버지 권적의 아버지로 외증조할아버지가 된다. 그런데 어떻게 외증조할아버지의 묘가 한상질의 묘가 되어 청주한씨들의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게 되었을까.

공민왕은 1372년 노국공주를 잃은 후 젊고 외모가 잘생긴 청년들을 뽑아 자제위를 설치하여, 좌우에서 시중을 들게 한다. 1374년 홍윤(洪倫), 한안(韓安), 권진(權瑨), 홍관(洪寬), 노선(盧瑄) 등 자제위 소속의 미소년들을 궁중에 출입하게 하여, 그들과 동성애를 즐겼다. 홍윤이 공민왕의 후궁이었던 익비(益妃)와 간통을 하여 임신을 시켰다는 사실을 최만생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공민왕은 “이 사실을 아는 자를 모두 죽이겠다.”고 말함으로써 최만생은 자신까지 죽게될까 두려워 홍윤에게 사실을 고해바쳤고, 며칠 후 그들은 쿠테타를 일으켜, 신하들과 궁녀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방화를 일삼아 결국 공민왕은 도망가려다가 홍윤, 권진, 한안, 최선, 최만생에 의해 붙잡혀 동년 9월 21일에 시해당했다. 다음날 정권을 잡은 구데타 세력은 임금의 명령을 이용하여 이인임, 경복흥 등을 소집해 사태 수습을 논의했으나, 이인임은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고, 구데타 세력은 체포되어 거열형과 삼족을 멸하는 극형을 처했는데 거기에는 권진이 있었다.

권진은 죽고 그 아버지도 유배지에서 살해당하는 등 일가가 화를 입었는데 이에 권진의 형 권적(權適)의 사위인 청주한씨 문경공(文敬公) 한수가 몰락한 처가를 수습해 권진의 할아버지인 권준(權準)의 제사를 잇게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600년이 넘는 세월을 청주한씨 문열공파 종중이 관리해 오던 묘가 졸지에 안동권씨의 묘를 조상님의 묘로 알고 관리를 해 왔으니 얼마나 황당한가!

다시 돌아와서 두 묘들은 똑같이 요(曜)가 청룡쪽에 있다. 증조할아버지의 묘는 입수(入首)부터 혈까지 흠(瑕疵:하자)을 잡을 수가 없고, 할아버지의 묘는 입수는 군인들에 의해 다소 훼손이 되었지만, 조금 내려오다가 백호쪽의 능침(베개)은 잘 형성이 되었지만 청용쪽의 능침은 생기다 말고 골이 파여 위에다 혈을 맺지 못햐고 아래에 혈을 지었다.

두 묘의 백호쪽은 흠을 잡을 수 없도록 잘 생기고 백호의 용들이 조산과 안산을 만들면서도 아주 예쁘게 잘 감싸 안았다, 청룡은 증조할아버지의 묘는 흠을 잡을 것이 없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묘는 간인방(艮寅方:동북쪽, 왼쪽어깨 부분)이 낮아 위의 묘는 바람을 맞고, 아래의 묘는 다행히 바람을 맞지 않아 혈을 지었지만 단지 그것 하나뿐이다. 그렇지만 할아버지의 묘는 골도 많이 파였으면서도 아래 묘까지는 청룡이 감싸주어 혈을 만들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요까지 청룡이 감싸는 형국이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를 못하고 요의 바로 위에서 청룡이 끝이 물을 쫒아 나가면서 바람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살풍(煞風)이 올라와 두 묘를 덮는다.

살풍을 맞는데, 위의 묘는 살풍이 바로 들어가고 있으며, 아래의 묘는 묘 앞에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돌아서 태방(兌方:서쪽 딸자리)으로 들어 가는데 그곳으로 양맥의 기운도, 수맥의 기운도, 살풍의 기운도 모두 태방으로 들어감으로써 발복도 딸 쪽에 더 있고, 화복도 딸 쪽으로부터 온다. 증조할아버지의 묘는 청룡이 요를 감싸주고 있지만, 할아버지의 묘는 청룡이 요를 감싸주지 못하고 요의 바로 위에서 청룡이 물을 감싸지 못하고 끝이 돌아 물을 쫒아 내려가는데 아쉬움이 너무 크다. 증조할아버지의 묘는 살풍이 없고, 할아버지의 묘는 살풍이 닿고 있고, 증조할아버지의 묘는 장풍(藏風)이 잘 되어 있지만, 할아버지의 묘 중 위의 묘는 장풍이 잘 되지 않은데다 지전류까지 흘러 잔디가 전혀 살지 못하고 잔디를 입히고 또 입혀도 제대로 살지를 못한다. 아래의 묘도 조금은 낮춰야지 그렇지 않으면 8부 능선부터는 잔디가 잘 살지를 못한다.

증조할아버지의 묘는 좌우로 묘가 설치되어 있지만 백호쪽의 묘는 아주 정확하게 혈에 점혈이 되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청룡쪽의 묘는 반쪽이 수맥에 걸쳐 있으므로 백호쪽으로 당겨서 점혈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좌향도 제대로 놓았기에 아쉬웠고, 조부의 아래 묘는 정확한 혈에다 좌향도 제대로 놓았다.

결론은 증조할아버지 한수의 묘로 인하여 발복을 했고, 할아버지 한상질의 묘가 만약 위의 묘라면 발복은 고사하고 화복이 덮쳤을 것이고, 만일 아래의 묘라면 발복과 화복도 함께 입었다고 할 수 있다.



최승관 일월풍수지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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