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부 송시량 묘 혈에서 요석이 출중하게 위치…발복으로 대유학자 송시열 탄생

[일월산인의 풍수기행(7)] 기로 본 우암 송시열의 고조부와 증조부의 묘

2017-11-17 08:11:10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고조부(高祖父) 송세량(宋世良)의 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고조부(高祖父) 송세량(宋世良)의 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고조부(高祖父) 송세량(宋世良)은 본관은 은진(恩津). 할아버지는 예조정랑(禮曹正郞) 송순년(宋順年)이고, 아버지는 안동대도호부사(安東大都護府使) 송여해(宋汝諧)이다. 1473년(성종 4)에 태어나, 학문에 열중하여 1489년(연산군 4)에 진사가 되고, 성균관에 들어가 학문을 갈고 닦았으나, 음보(蔭補: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훈(功勳)이나 음덕(蔭德)에 의하여 특별한 대우를 받아 관직을 얻거나 벼슬에 보임됨)로 선릉참봉(宣陵參奉)과 건원릉(健元陵)의 참봉을 지냈으며, 1539년(중종 34)에 사망했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증조부(曾祖父) 송구수(宋龜秀)는 본관은 은진(恩津). 호는 서부(西阜). 할아버지는 안동대도호부사( 安東大都護府使) 송여해(宋汝諧)이고, 아버지는 참봉(參奉) 송세량(宋世良)이다. 1497년(연산군 3)에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재질이 뛰어났고 효도와 우애가 남달리 깊어 부모의 상을 당해서는 여막을 짓고 효와 예를 다했다. 음서로 벼슬은 영경전참봉(永慶殿參奉)·종묘서봉사(宗廟署奉事) 등을 지냈으며, 1538년(중종 33)에 사망했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고조부(高祖父) 참봉(參奉) 송세량(宋世良)의 묘는 입수절(入首節)이 중후(重厚)하게 혈(穴)까지 기복속기(起伏束起)하여 결혈(結穴)하였다. 더욱 아름답고 귀증(貴證)함은 혈에서 요석(曜石:혈이나 당판에 있는 바위를 말하고 이는 귀를 상징한다.)이 출중(出重)하게 위치하고 있다.

혈 아래의 귀증은 인자수지(人子須知)에도 요석(曜石)으로 귀증과 발복함이 유구(悠久)하다고 했다. 특히 양요(兩曜)가 가깝게 있어 혈로 기(氣)가 들어감이 빠르므로 인하여 고손(高孫)인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문묘종사(文廟從祀:문묘(文廟)는 공자(孔子)의 위패(位牌)를 모신 사당)중 한 명인 대유학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혈(穴)은 우득좌출수(右得左出水)하는 형세(形勢)의 자리로서 양수(兩水)가 합수처(合水處)에 소수(小水:적은 물)이지만 파구처(破口處)에 상하 두 곳에 입석(立石)이 자리잡고 있어 귀증을 보여주고 있듯이 발복은 고조부(高祖父) 묘에서 기(氣)가 시작되어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께서 문묘에 드시는 기본 바탕이 되었다.

증조부(曾祖父) 참봉(參奉) 송구수(宋龜壽)의 묘는 대지명당(大地明堂)으로 발복(發福)하게 되었다. 건좌손향(乾坐巽向)으로 혈을 만들고 나간 주맥(主脈)이 반궁요포(返宮繞抱)하고 다시 출맥(出脈)하여 기복종발(起伏종發)하고 목성(木星)을 병오정방(丙午丁方)에 탁립(卓立)하여 대귀지(大貴地)임을 표증(表證)하였고 본연 목성체가 환포(環抱)하여 안산으로 파구를 관쇄(關鎖)하였고 중명당(中明堂) 파구에 석요가 좌우에 병립(竝立)하여 문호를 지키고 외명당(外明堂)에는 수문장(守門將)격인 북진(北辰)이 서 있기에 명당 중에서 대지임을 말해 주고 있다.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증조부(曾祖父) 송구수(宋龜秀)의 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의 증조부(曾祖父) 송구수(宋龜秀)의 묘

지리서에 삼화병수(三火竝秀:이(離)는 천간화(天干火)가 되고, 병(丙)은 지록화(地祿火)가 되고, 정(丁)은 인작화(人爵火)가 된다. 세방위에 봉우리가 솟아 있고 빼어나면 극히 귀하다.)의 대귀(大貴)는 병오정(丙午丁)이라 했는데, 사문기(赦文起:병오경신(丙午庚申)의 방위에 모난 산(方山)이 있으면 사문성(赦文星)이라 하고 영원토록 흉화(凶禍)가 없다 한다.) 위복(爲福)은 병정경신(丙丁庚申)으로 결작한다고 하였는데 탁립(卓立:여럿 가운데 특별히 뛰어난 것)하여 목성의 귀증은 하고 있으나, 흠이 있는데 흔군사(痕裙砂:한복치마를 빨랫줄에 널어 놓은 모양으로 이러한 땅이 보이는 곳에 묘를 쓰면 사람이 음탕해지거나 음탕한 후손이 나와 망신당할 뿐 아니라 재물도 잃게 된다고 한다.)가 있다는 것이다. 흔군사가 있으므로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이 83세에 사약(賜藥)을 받았다고 본다.

기감(氣感)이 출중한 명사라면 비보풍수(裨補風水)로 액(厄)을 막을 수 있었는데 아쉽기가 한이 없음을 금치 못하였다. 100% 명당은 없다고 하지만 충분히 살을 피할 수 있는 명견과 기감으로 화를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나 풍수지리를 한다고들 하지만 명사라면 가능했을 것 같은데 아쉽기만 하다.



최승관 일월풍수지리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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