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덕부 묘는 병룡(病龍)으로서 하수‧명당‧용호‧조대가 격(格) 갖추지 못해 아쉬워

[일월산인의 풍수기행(9)] 기(氣)로 본 청송 심씨 청성백 심덕부(靑城伯 沈德孚)의 묘

2018-01-08 10:29:42
위에서 본 심덕부의 묘.
위에서 본 심덕부의 묘.
심덕부(沈德符 1328-1401)는 청송 심씨의 시조(始祖) 심홍부(沈洪孚)가 증조부(曾祖父)이며, 고려 때 합문지후(閤門祗候)를 지낸 심연(沈淵)이 조부(祖父)이고, 아버지 심룡(沈龍)은 고려 때 전리정랑(典理正郎)을 지냈다. 그 당시에도 가문(家門)을 위해 명당을 엄청나게 찾아다닌 모습을 족보(族譜)에서 묘(墓)의 위치(位置)를 보면 알 수 있다.

증조부의 묘는 경상북도 청송(慶尙北道 靑松)에, 조부의 묘는 전라북도 익산시(全羅北道 益山市)에, 아버지의 묘는 경기도 안성(京畿道 安城)에, 본인의 묘는 경기도 연천(京畿道 漣川)에, 아들 심온의 묘는 경기도 수원시(京畿道 水原市)에 있는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것이 비단 청송 심씨의 가문만 그런것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가문들이 그렇다.

그런데 정작 명당을 가까운 곳에 놔두고 왜 그리 먼 곳을 찾아 다녔는지 모르겠다. 명당(明堂)이라고 해서 찾아가보면 혈(穴)은 고사하고 대부분이 기맥도 타지 못한 무맥지(無脈地)만 해도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수맥과 수맥혈(水脈과 水脈穴)에 위치해 있다. 내집 근처의 조그마한 혈만 못한 것을 뭐 그리 욕심을 내고 찾아 헤맸는지 아쉬움이 크다.

현명한 지사(賢明한 地師)를 만났다면 그렇게 했을까? 욕심은 끝이 없는데, 만약에 그랬다면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심덕부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문신이자 무신으로서 창왕 때 위화도 회군공신 2등에 책록, 공양왕 때 중흥 9공신에 책록, 1391년 안사공신에 책록, 1392년 조선 개국 후에는 개국공신 위화도 회군공신 1등에 책록되고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다. 또 1399년 좌정승에 올랐으며 당시의 권력층들과 얽히고설킨 혼맥으로 권력의 맛을 제대로 보았음을 족보를 보면 알 수 있다.

대략 살펴보건대 다섯 째 아들 청천부원군 영의정 심온(靑川府院君 領議政 沈溫 ?-1418)이 세종대왕의 장인이며, 소헌왕후(昭憲王后)의 아버지가 되고, 부인 순흥 안씨의 아버지는 좌의정 안천보(安天保)며, 태종의 장인 민제의 3남인 지돈녕부사 민무휼의 딸들과 아들 심준과 심회가 결혼했는데 민무휼은 세종대왕의 외삼촌이다. 여섯 째 아들 심종(沈淙)이 태조의 딸 경선공주(慶善公主)와 결혼한 부마 청원군(靑原君)이고,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의 형인 정양부원군(定陽府院君) 왕우(王瑀)의 사위 심정(沈정)이 그의 일곱 째 아들이고 태조 이성계의 아들 무안대군 방번(撫安大君 芳蕃)도 왕우의 사위이므로 태조와는 겹사돈지간이 된다.

심덕부의 묘는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산110에 있다. 지금 현존한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심덕부가 사망한 당시의 풍수지리가들의 실력(實力)을 아니 그 당시 풍수지리가들의 기감능력(氣感能力)에 대하여 개탄(慨嘆)을 금치 못하며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 풍수지리를 한답시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반성의 여지(反省의 餘地)를 가지게 되어 실력 향상에 심혈을 기울여 하나의 가정이 하나하나 모여 국가의 백성이 된다고 생각을 한다면 국익 차원에서도 풍수지리가들이 어떠한 각오로 몸과 마음을 헌신해야 하는지 물어 보고 싶은 마음이다.

그 당시에도 풍수지리는 바람과 물 그리고 땅의 이치를 다뤄 생기가 흩어지지 않고 모인 곳을 찾아내어 그 곳에 조상들을 모셨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접합만 시킨다면 생기의 힘으로 죽은 자의 시골(屍骨)은 누런 황골(黃骨)로 변하며 자손에게 동기감응(同氣感應)으로 발복하게 될 것이다. 그런 곳에 정자나무를 심어놓는다면 천년 괴목이 되어 우리 인간에게 그늘을 선사하여 한여름 더위에 그늘목으로서 한몫을 하게 된다.

특히 풍수지리는 용의 진짜(眞)와 가짜(假)를 분별하는 것이 지리의 제일의(第一義‧가장 뛰어난 이치)이다. 진용(眞龍)은 출신이 활동적이고 나아감에 있어 혈의 뒤가 개장천심(開帳穿心)하여 기복(起伏)으로 인한 박환(剝換)과 전변(轉變)하여 입수에 이르러 혈정(穴情)이 명백하고 하수(下手)가 유력(有力)하여 명당이 평정(平正)하여 전안(前案)이 특달(特達)하며 사수(四獸)가 유정(有情)하며 수구(水口)가 관쇄(關鎖)되어 법도(法度)에 합당(合當)한 것을 진결(眞結)이라 한다. 하늘이 지어주고 땅이 설치하여 준다는 천조지설(天造地說‧하늘이 지어주고 땅이 설치하여 준다는 설)은 자연의 묘(自然의 妙)이며, 털끝만큼이라도 욕심이나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혈(穴)은 공산품(工産品)이 아니기 때문에 오직 진용(眞龍)을 얻어 혈에 정확하게 꽂았다면 모든 것이 저절로 다 응부(應副)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천지간에 모든 물건들은 진(眞)이 있고 가(假)가 있으며, 정(正)이 있고 사(邪)가 함께 존재함을 알아야 한다.

진짜로 위장한 가룡(假龍)은 진(眞)을 어지럽히고 정(正)을 눈멀게 방해(訪該)한다.

심덕부의 묘는 입수룡(入首龍)부터 사세(四勢)가 모두 병룡(病龍)으로서 하수(下水)와 명당(明堂)이 그리고 용호(龍虎)와 조대(朝對)가 하나같이 격(格)을 갖추지 못했음을 밝혀둔다. 국(局)에 올라보면 기봉(奇峰)이 나열(羅列)함에 있어 특조(特朝)가 없을 뿐만 아니라 왼쪽 어깨가 깊이 파여 어깨가 시리고 기(氣)를 빼앗아 간다는 월견(越見) 산봉(山峰)이 넘겨다 보는 것이 가(假)지임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천지정위(天地正位‧하늘과 땅이 그 위치를 보전하여 안정을 얻는 길)인 파구처(破口處)가 공허하여 신술 건해풍(辛戌 乾亥風)이 들어와 살풍(煞風)으로 변한 한냉기(寒冷氣)가 덮침으로써 기가 흩어져 도저히 기가 모일 수 없는 가지(假)지임을 밝혀 둔다.



최승관 일월풍수지리연구원 원장

오늘 하루가 궁금하십니까? 더보기

빅 데이터의 과학! 더보기

몸에좋은 자연치유의 힘 더보기

  • 경주 석장동 암각화가 그린 것은? 2018.01.19

    바위 위쪽에 삼각형과 사다리꼴을 상하로 붙인 형태(도토리형)로 안쪽에는 원형홈이 새겨져 있고 둘레에 짧은 선을 방사상으로 새긴 패형 암각화가 있는데, 이를 신상의 얼굴로 보기도 하며 석검과 결합된 여성 성기로 보기도 한다. 바위면 여기저기에 중심점과 그...

    자세히보기  
  • 예기청소 위쪽 암벽에 새겨진 경주 석장동 암각화 2018.01.18

    1994년 4월 동국대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학술조사팀이 발견한 경주 석장동 암각화는 동국대 경주캠퍼스 남동쪽 형산강변 절벽에 있다. 이곳을 금장대라 부른다. 금장대 밑은 물이 깊고 맑아서 과거부터 예기청소(藝岐淸沼)라고 불렸다. 석장동 암각화는 예기...

    자세히보기  
  • [박병석 셰프의 맛난 세상(142)] 톳나물 무침 2018.01.17

    ◍ 재료 톳나물 70g, 참기름 2작은술, 두부 60g, 멸치액젓 1작은술, 깨 한꼬집, 간마늘 20g ◍ 만드는 방법 1. 톳나물을 끓는 물에 데쳐준다. 2. 두부를 으깬다. 3. 멸치액젓, 깨, 간마늘, 참기름, 두부, 데친 톳나물을 무쳐 준다. ◍ tip ...

    자세히보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