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호암리 기호암각화와 메소포타미아 점토판 문서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320)]

2018-06-21 09:38:17
익산 호암리 암각화
익산 호암리 암각화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 이는 미국의 고고학자 사무엘 크래머가 1956년 펴낸 동명(同名)의 책에서 한 말이다. 그는 전세계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메소포타미아 점토판 문서들을 번역·분석한 결과, 수메르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발견되고 기록된 것이 최초의 낙원설화·창조설화·서사시·학교제도·의회제도·설형문자·법전 등 39가지나 된다면서 그같은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는 수메르지역(우룩 이후 셈계인들이 정착한 메소포타미아 남부지역)이 고대 이집트보다 앞서 문명이 이루어졌다고 분명히 밝혔던 것이다.

문자의 발달 과정을 알아보면 단순한 그림문자인 상형문자에서 설형문자(楔形文字 쐐기문자cuneiform script)로 발전하였다. 설형문자는 그 이전의 그림문자와는 달리 구체적 사물뿐만 아니라 동작이나 추상적인 개념까지도 표현했다. 예를 들면 발(脚)이란 단어는 발뿐만 아니라 '서다'와 '간다' '온다'는 뜻을 갖고 있었으며, 화살이란 말은 '산다'(生)와 '생명'을 함께 뜻했다. 그러나 아직 시제(時制)나 누가 누구에게, 또는 어디서 어디로 라는 대상이나 목적격 개념이 없었기에 완벽한 문장이 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마귀를 쫓는 주문(呪文), 신과 신전을 찬양하는 시, 아버지가 아들에게 가르치는 잠언(箴言), 도시와 도시 사이에 생긴 전쟁을 서술한 전쟁 이야기, 정의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사회개혁 칙령이나 법전 등을 편찬했다. 그중에서도 '대홍수 이야기'와 '길가메시 서사시' '우르남무 법전' 등은 수메르 설형문자가 남긴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수메르의 설형문자는 아카드인에 의해 상속되고 이것은 다시 바빌로니아인, 아시리아인들에게 전해져 고대 오리엔트 전 지역에 퍼졌다. 이어서 인도유럽어 계통인 히타이트어와 페르시아어에도 전해져 다양한 변화를 겪으면서 약 3000년간 서아시아 지역의 공용어로 사용되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그 사용이 크게 위축되다가 서기 74년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19세기 중엽 유럽 언어학자들의 손에 의해 해독되면서 그들의 내밀한 세계가 알려지게 되었다.

BC 3000년 경부터 약 3000년간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고대 오리엔트에서 광범하게 사용된 문자로서 설형이 쐐기를 뜻하는 한자이다. 기원전 24세기경 수메르지방에서 생겨 쓴 이 문자는 글자 쓰기에 힘을 주어 쓰되 곡선 획은 차차 없어지고 직선만 사용하여 쓴 문자이다. 바빌로니아에서도 기원전 17세기에 설형문자가 쓰였고, 메소포타미아 북부 아시리아 에서도 기원전 8, 9세기에 쓰였는데 삼각형과 직선으로 나타냈다.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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