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신화의 무대 백두산

[김경상의 한반도 삼한시대를 가다(357)]

2018-09-05 12:30:48
단군신화의 무대인 백두산.
단군신화의 무대인 백두산.
1285년(충렬왕 11)에 일연(一然)이 편찬한 《삼국유사》 고조선시대에 인용된 고기(古記)의 기록에 따르면 일찍이 백두산이 우리 한민족의 발상지로 나타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 하느님의 작은아들 환웅(桓雄)께서 여러 차례 인간세계에 내려가고자 하자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의 뜻을 아시고 하계를 두루 살피시더니 태백(太伯) 곧 백두산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한 곳으로 여기시어, 곧 아드님에게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고 내려가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께서는 무리 3000을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 박달나무 아래에 내리시어 그곳을 신시(神市)라 하시니, 이 분이 곧 환웅천황이시다.”

이른바 단군신화라고 불리는 이 기사의 무대가 다름 아닌 백두산이다. 단군신화가 반영하는 시대는 청동기문화의 등장시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직까지는 백두산 일대에서 선사시대의 유물·유적이 발견, 보고된 바는 없다.

백두산은 사화산이 아니라 200∼300년을 주기로 분출했던 휴화산이었던 점으로 미루어, 백두산은 한민족의 직접적인 거주지였다기보다는 불을 뿜어내어 인간의 접근을 거부하는 성역으로 간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인지가 발달하지 못한 선사시대의 사람들은 신비로운 금단의 지역으로 여겼을 것이므로, 민족의 시원을 말해주는 신화의 무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도 백두산 지역은 민족의 기원설화를 안고 있는 까닭에 인간의 거주가 제한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백두산 지역에서의 유물·유적의 발굴은 기대하기 힘들다.

삼국이 정립되기 이전의 시기에는, 숙신·부여·읍루 등의 북방유목민족 계통의 종족들이 백두산 주변에서 흩어져 살았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하여 서남쪽에는 고구려, 서쪽에는 부여, 북쪽에는 읍루, 동북쪽에는 숙신, 동쪽에는 동옥저가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백두산은 위의 여러 종족이 모두 성역으로 간주하였다.



김경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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